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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의 편견을 바꿔 놓고 세계적 문화외교관을 꿈꾸는 남자
    라이프 2017. 8. 8. 23:39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시커머스''사바나의 아침' 코너가 인기를 끌던 때가 있습니다. 한국인의 고정 관념 속에는 백인들은 모두 잘 살고, 흑인들은 모두 못 산다고 생각하죠. 최근에 이러한 한국인의 인종 차별적인 생각을 바꿔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가나 출신의 샘 오취리입니다. 샘 오취리가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고, 어떻게 한국 사람들을 변화시켰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새로운 세상 같은 한국 적응기

     샘 오취리는 대한민국 정부의 국비 장학생에 선발되어 2009년 고려대학교 국제 어학원에 입학하게 됩니다. 입학 조건이 1년 내에 언어를 배우고 4년재 대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힘든 과정이죠. 한국에서 자동차를 수입해 가나에서 판매하는 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권유로 지원하게 되었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학하게 되었죠. 하지만 진짜 고생은 아직 시작도 안한 상태였습니다.

     2009년 3월 29일 샘 오취리가 인천 공항으로 입국 했을때 모든 것이 새롭고 걱정스러웠습니다. 인천공항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놀랐고, 한복만 입고 다니는 줄 알았던 한국 사람들의 놀라운 패션 감각에 한번 더 놀랐답니다.  제일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날씨였습니다. 일 년 내내 더운 지역에서 살던 그에게는 한국의 봄 날씨도 너무 추웠습니다. 도착하자마자 감기에 걸려 고생도 했죠.

     그는 공항버스를 타고 기숙사로 가던 첫날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도시는 너무 깨끗하고 길은 차로 가득 찼습니다. 학교 일들은 모두 잘 정리되어, 매번 놀라 정도로 빨리 처리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기숙사 방은 가나 집보다 너무 작아 놀랐습니다.

       한국에서 인종 차별

     샘 오취리 은 한국어를 빨리 익히고 한국문화를 익히려고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다양한 체험을 통해야만 한국에 빨리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그를 문전 박대했습니다. 농구를 좋아하는 그가 농구장에 가면 다른 사람들은 그를 피해 다녔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탔을 때는 샘 오취리의 옆자리가 비어 있어도 아무도 앉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중년 아줌마로부터 'XXX야! 네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애기까지 들었습니다. 택시들마저도 승차거부를 하기 일쑤였죠.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차별도 심했습니다. 영어에 능통했던 샘 오취리가 영어 학원에 취업하려 하자, 학생 어머니들이 백인만 좋아한다는 이유로 면접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방송 활동 초기에 드라마에 단역으로 나올 때도 백인은 주인공, 흑인은 악당이나 좀도둑으로 무조건 정해져 있었죠.

     샘 오취리는 장신에 늘씬한 체형으로 근육도 탄탄해 모델 수준의 체형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그의 꿈은 가나 초콜릿 모델은커녕 방송 생활 동안 아직 CF조차 못 찍었습니다.

       방송 출현으로 새로운 기회를 잡은 샘 오취리

     샘 오취리는 2013년 7월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인종 차별 이슈의 사연자의 친구로 TV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방송 관계자들은 한국어를 잘하는 흑인 방송인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눈여겨보았고,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개그 콘서트, 코미디 빅리그에 게스트로 출연을 하면서 얼굴이 점점 알려지게 되었고 최고의 사랑, 아이리스2, 나의 절친 악당 등의 영화와 드라마까지 출연하였죠.

     그가 자신의 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던 곳은 '비정상 회담'이었습니다. 깐죽대는 말투와 방방 뛰는 성격 때문에 비정상 회담에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했죠. 아프리카 문화를 소개하는 것은 물론 사회 이슈에 대해서 온건보수파의 입장에서 보수파와 진보파의 중계 역할로 매끄러운 진행을 이끌었습니다.

     방송을 통해서 샘 오취리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 사람들의 흑인에 대한 기존 생각들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비정상 회담에 같이 출연했던 동료들과 대형쇼핑몰 광고까지 찍었죠. 덕분에 가나 출신의 친구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샘 오취리 덕분에 친구들도 한국에서 받던 차별들로 줄어 고마워하게 되었답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이겨내고 문화 외교관을 꿈꾸는 샘 오취리

     한국어 어학당 방학 때에 다른 아시아 친구들이 자국으로 돌아갈 때 혼자 기숙사 로비에서 쓸쓸하게 크리스마스 캐놀을 들어야 했습니다. 전화 요금 체계를 잘 몰라서 한 달 전화 요금이 4백만원 낸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어려움과 사회 안에서 차별을 이겨내기 위해서 스스로 변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화를 내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것이죠.

    사람들을 피하기보다는 난감한 상황 속에서도 웃으면서 정중하게 잘못을 고쳐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인종차별을 하는 게 아니라 단지 모를 뿐이라는 대인배 같은 말까지 하고 다닙니다.

    방송을 통해서 인지도가 늘어나고 사람들이 인식이 바뀌는 것을 보고 방송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되었죠. 그래서 방송을 통해서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접근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실제로 그 효과가 있었고요. 전라도 완도 김 홍보대사까지 유쾌한 마음으로 하고 있죠.

     그는 향후 약 10여 년 강 방송 생활을 더하고 고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가나에서 모든 아이가 평등하게 배울 수 있는 학교를 건축하는 것이 꿈입니다. 국제 구호개발 NGO 인 월드비전과 함께 이미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한국에 있든지 가나에 있든지 한국과 가나를 이어주는 문화외교관으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오해를 풀고 가까워질 수 있는 가교역할을 계속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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